본문 바로가기
인문학

김사량 단편 <빛 속으로>

by 인문학엄마 2024. 1. 18.
반응형

김사량 작가는 한국의 근현대사 문학에서 자주 사라지곤 했는데, 김사량이라는 작가의 작품 빛 속으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빛 속으로

 

빛 속으로

작가소개

김사량(1914 ~ 1950) 소설가. 본명은 시창(時昌). 1931년 평양보고 5학년 때 광주학생운동에 자극받아 일본군 배속장교 배척운동을 하다가 동맹휴업 주동자로 퇴교당했습니다. 일본에 건너가 도쿄제대를 거쳐 동경제국대학 독문학과를 졸업했습니.

1943년 귀국하여 일본군 보도반원으로 북부 중국에 파견되었다가 연안으로 탈출하여 팔로군 조선의용군 기자로 활동하다가 광복과 함께 귀국했습니다. 광복 후 북한에서 활동하였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 종군작가로 참전하여 인민군의 전투상황을 취재, 인민군을 고무·찬양하는 작품을 썼습니다. 

김사량 작가는 동경제국대학 도문학과에 입학하여 학우들과 함께 문예지를 일 일어로 된 작품 「빛 속에」(1939)를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은 민족적인 멸시와 억압 속에서 허덕이면서 그중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주인공의 고민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의 창작적 재능이 알려지게 되었고 1940년「빛 속에」가 아쿠다카와상 후보로 예정되기도 했습니다. 김사량은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 치안유지법 위반죄로 구금되었고, 일제강점기에 대표적인 작품으로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을 썼습니다. 광복 직후 북한으로 돌아와서는 희곡 「뇌성」등을 창작했고, 그 이후에는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위한 작품들을 탄생시켜 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할 때 서울전투와 낙동강을 건너 마산까지 나아갔으며, 이 기간에는 종군 일기를 써내기도 했습니다. 

1950년 미군의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북상하다가 원주지역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김사량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빛 속으로』는 김사량이 식민지 치하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두려움과 슬픔을 표현하는 작품입니다. 또한 『천마』와 『풀이 깊다』는 일본의 정책과 그에 대한 비판, 그리고 자아성찰과 담담한 서사로 그가 가진 정신세계와 작가로서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처럼 김사량은 자신만의 개성과 철학을 지닌 작가였으며,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빛 속으로 줄거리

빛 속으로는 이름을 둘러싼 갈등이 주요 사건이 되는 작품입니다. 1인칭 화자 '나'는 동경제대에 재학 중인 조선인 학생으로 빈민촌의 S 협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조선 이름으로 남(南)이지만 아이들은 모두 그를 '미나미'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그는 굳이 자신의 이름을 남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S대학협회의 시민교육부의 아동반 수업을 맞게 된 미나미는 야마다 하루오라는 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야마다 하루오라는 아이는 미나미에게 내면적 갈등과 새로운 의식을 만들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됩니다.

야마다 하루오는 아동반에서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아이들 주위를 맴도는 겁이 많고 어두운 아이였다. 아동반 수업을 진행하던 중, 야마다 하루오는 미나미가 일본인이 아닌 ‘남’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야마다 하루오는 미나미를 조센징이라고 놀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사건은 야마다 하루오와 미나미 간의 갈등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야마다 하루오의 이야기에서 나타납니다.

'나'는 내 안에  품었던 비굴한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조선인이라는 것을 감추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 스스로가 조선인성을 감추는 것에 대해 가책을 느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빛 속에서 나오는 식민지인의 정체성은 단순히 자신의 입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외부로 드러낼 것인가, 감출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자신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일본식으로 불린 것에 대해 가책을 느끼던 '나'의 내면적 갈등을 말하는 자신과 듣는 자신으로 끊임없이 분열되는 독백 장면에서 극대화됩니다.

김사량은 친북 작가인 동시에 친일파로 분류되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1980년대 말까지 국내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은 비운의 작가이죠. 그러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윤동주와 비견되는 저항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사량이 친일작가였는지 아니면 저항작가였는지는 아직 불명확한 것 같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