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고집전
<옹고집전> 줄거리
옛날 옛적 영남 땅 옹당촌에 옹고집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성미가 괴팍하고 툭하면 쇠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이름이 아예 옹고집이었다. 고을에서 제일가는 부자였어도 병든 어머니에게 약 한 첩 제대로 쓰지 않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볼 줄 모르는 구두쇠였다. 괴팍한 성미 가운데에서도 으뜸은 동냥 나온 승려를 학대하는 것이다. 승려에게 동냥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승려를 때리고 귀를 뚫어 문밖으로 내던져 버리기 일쑤였다.
이윽고 옹고집 소문이 금강산 취암사에 머무는 도사의 귀에 들어갔다. 도사는 학대사를 시켜 옹고집을 찾게 했다. 학대사는 거지 차림을 하고 옹고집네 집으로 가서 시주를 청했다. 이에 옹고집은 학대사를 보고 땡추중이라 욕을 퍼부었다. 부모를 버리고 부처의 제자랍시고 거짓 공부나 일삼으며 어른 보면 동냥 달라하고, 아이 보면 절로 가자고 꼬인다며 오히려 학대사를 꾸짖었다. 학대사는 그런 옹고집을 보고 비명횡사할 거라고 관상을 봐 주었다. 그러자 옹고집은 길길이 날뛰며 학대사를 때리고 귀를 뚫어 내쫓아 버렸다.
다시 취암사로 돌아온 학대사는 어떤 벌을 내려 옹고집을 혼내 줄지 여러 승려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승려들은 온갖 끔찍한 벌을 생각해 냈다. 그러나 학대사 생각은 달랐다. 옹고집에게 가혹한 벌을 내리기보다는 옹고집 스스로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벌이라야 했다. 학대사는 따로 동자승을 데리고 나갔다. 동자승더러 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라 이르자 동자승이 서툰 솜씨로 얼기설기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학대사가 허수아비 이마에 부적을 붙이니 허수아비가 옹고집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곧바로 학대사는 가짜 옹고집을 진짜 옹고집네 집으로 보냈다.
잠시 후 진짜 옹고집이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저와 똑같은 사람이 주인 행세를 하며 툇마루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둘이 서로 내가 진짜 옹이라 시비가 붙었지만, 집안사람들 그 누구도 진짜와 가짜를 가리지 못했다. 급기야 관가로 달려가 사또 앞에서 송사까지 벌였다. 그 결과 가짜 옹고집은 진짜로 진짜 옹고집은 가짜로 판가름이 났다. 가짜 옹고집은 의기양양하여 집으로 돌아가고, 진짜 옹고집은 곤장을 맞고 고을 밖으로 쫓겨났다.
집으로 돌아온 가짜 옹고집은 지난날 잘못을 뉘우쳤다. 광문을 열고 재물과 곡식을 풀어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을 돌보기로 했다. 그 뒤 집안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부부 금슬도 더욱 좋아져 옹고집 부인은 네 쌍둥이를 낳았다.
한편, 진짜 옹고집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거지 신세가 되었다. 구걸로 끼니를 때우며 하루하루 겨우 살아갔다. 그러다 어느 날 산적 떼를 만나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로 몰매를 맞았다. 옹고집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겨우 너른 들판에 다다라 그늘에 몸을 뉘었다. 그때 봇짐 진 사내들이 쓰러져 있는 옹고집을 보고 마을로 데리고 갔다. 그중 한 사내가 어려운 살림에도 옹고집을 먹여 주고 재워 주었다. 그런 인정에 감동한 옹고집은 몰래 그 집을 빠져나와 다시 정처 없이 떠돌다 금강산 골짜기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구걸을 해서 살아가야 한다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때 백발노인이 나타나 옹고집을 꾸짖었다.
옹고집은 지난날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구했다. 그러자 백발노인이 부적을 하나 건네주었다. 옹고집이 그 부적을 몸에 지니고 집으로 돌아가니 가짜 옹고집이 허수아비로 변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옹고집은 이제 다른 사람에게 베풀며 사는 삶을 살기로 했다.
<옹고집전> 해설
<옹고집전>은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고전 소설이자 판소리계 소설이다. 본디 설화로 전해 오다가 '옹고집 타령'이라는 판소리를 거쳐 소설로 이어 내려온 작품이다. 그 근원 설화로는 장자못 전설이나 쥐 둔갑 설화를 꼽는다. 동냥 나온 승려를 구박하여 화를 입는다는 설정은 장자못 전설을 진짜가 가짜 때문에 쫓겨났다가 뉘우치고 제자리를 찾았다는 설정은 쥐 둔갑 설화를 닮았다.
무엇보다 <옹고집전>은 그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옹고집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그리고 그 이름에 주인공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고집이 얼마나 센지 이름이 아예 옹고집이다. 게다가 옹고집은 심술이 사납고 인색하며 불효막심하다. 특히 동냥 다니는 승려를 매타작 하여 내쫓기 일쑤였다.
이런 옹고집은 물론 작자가 지어낸 허구적 인물이다. 조선 후기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돈을 모으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윤리나 인정을 저버린 사람이 나타나자 그에 대한 반감이 이야기를 통해 반영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다 보면 그 배경이 되고 있는 조선 후기 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옹고집의 삶을 통해 악한 것을 멀리하고 선한 것을 가까이하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
<옹고집전>은 누가 썼을까? 그리고 언제 썼을까? 대부분 고전 소설이 그렇듯 <옹고집전> 또한 누가 언제 썼는지 알 수 없는 작품이다.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다 하여 '작자 미상', '연대 미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고전 소설은 왜 작자와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그중 하나는 문자나 영상 같은 기록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에 살이 붙어 그 내용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그러던 것을 나중에 글로 쓰면서 소설이 된 것이다. 그러니 누가 맨 처음 <옹고집전>을 썼는지, 또 언제 썼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옹고집전>은 대략 조선 영·정조 시대에 쓰였다고 한다. 오늘날처럼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때에 책으로 펴낼 수 있는 방법은 손으로 쓰거나 나무판이나 금속판에 새겨 펴내는 것이었다. 이것을 각각 필사본, 목판본 활자본이라고 부른다. <옹고집전>은 현재 목판본이나 활자본이 나오지 않았다. 1950년에 필사본을 대본으로 하여 주석을 단 책이 나오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때 사용한 필사본은 전하지 않는다. 게다가 <옹고집전>은 원래 판소리로 불렀는데도 그 판소리마저 전하지 않는다.
소설에 나타난 소재와 형식이나 당대 사회의 모습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그 소설을 이해하는 데 밑거름이 된다. 작자는 작품을 쓴 의도와 교훈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내용에 알맞은 소재와 형식을 사용하며, 소설 안에 당대 사회 배경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또한 옹고집과 놀부가 비슷한 인간 유형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 둘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비현실적인 소재, 풍자와 해학의 재미
<옹고집전>은 소재와 형식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비현실적인 소재, 풍자와 해학이다.
먼저 비현실적인 소재는 학대사가 허수아비에 부적을 붙여 가짜 옹고집으로 둔갑시키는 장면에 등장한다. 가짜 옹고집은 짚으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겉모습을 보면 진짜 옹고집과 똑같이 생겼다. 이처럼 도술을 부려서 가짜를 만든다는 설정은 고전 문학 작품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축지법을 써서 공간을 이동한다는 설정도 비현실적인 소재이다. 이것은 물론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마치 진짜 일어난 일처럼 묘사하고 있어 고전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다음으로 풍자와 해학은 이야기 곳곳에 녹아 있다. 무엇보다 옹고집이란 인물 자체가 풍자의 대상이다. 그 못된 성격과 행실을 이야기 전반부에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온통 옹고집의 풍자에 집중되었다. 일테면 옹고집은 남 잘되는 꼴을 못 보고, 남의 농사 못되기를 바라고, 남이 입은 좋은 옷 빼앗아 입고, 병든 어머니를 짐으로 여기고, 탁발승을 매질하여 내쫓는다. 거기에는 과장된 표현이 더러 있지만, 사실적인 표현이 그런 과장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특히 진짜 옹고집과 가짜 옹고집이 시비를 벌이는 대목은 해학의 절정을 이룬다. 집안 내력과 세간을 제대로 대는 사람이 진짜 옹고집이다. 그런데 되레 가짜 옹고집이 막힘없이 술술 잘도 읊어 대고, 진짜 옹고집은 더듬더듬 말이 막히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사또의 질문이 이어지고, 진짜 옹고집은 더듬거린다. 이런 질문과 대답의 반복은 진짜 옹고집의 정체를 몰라서 확인하려고 그런다기보다는 시비 붙은 것 자체를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한 문학적 장치이다. 흥미를 끌어내고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판소리 사설이 들어간 듯 대화에 재미를 주었다.
이처럼 이야기 속에는 악한 인물 옹고집을 우습게 만들어 깎아내리는 풍자, 재미와 웃음을 유발하는 해학이 풍부하다. 풍자와 해학은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서민 의식이 성장하는 가운데, 지배 계층의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문학적 방법이었다. 특히 옹고집처럼 재산은 많으나 베풀 줄 모르는 부자가 생기자, 그 부자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풍자와 해학을 끌어들였다.
조선 후기는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를 무너뜨리는 경제적 변화와 이에 따른 신분 질서의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던 때였다. 큰 고을을 중심으로 시장이 뻗어 나갔을 뿐만 아니라, 외국과 무역 거래가 활발했다. 그에 따른 화폐 거래 또한 활발했다. 그러다 보니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상업 활동을 통해 차츰 많은 돈을 벌어들이면서 신흥 부호로 성장하게 되었다.
신흥 부호는 양반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신분 질서에 변화가 일어났다. 돈이 없는 양반보다 더욱 큰 힘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윤리나 도덕 같은 옛날 가치관이 무너지고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새로운 가치관이 생겨났다. 옹고집이 바로 그 시대 상황과 신흥 부호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돈이 많은데도 온갖 악행을 일삼는 옹고집은 조선 사회에서 바로잡아야 할 인물이었다. 못된 옹고집에게 벌을 내려 물질보다 귀한 정신을 회복해야 했다. 그런 백성들의 소망을 담아 작자가 글로 표현한 것이 <옹고집전>이다.
<옹고집전>이 쓰인 시대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시간적으로 큰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잘못된 사회 모습은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는 바로 그 모습을 들여다보며 잘못을 깨닫고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옹고집전>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교훈은 권선징악이다. 옹고집처럼 악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악한 사람일지라도 잘못을 깨닫고 착한 사람으로 거듭난다면 그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돈'이 중요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급기야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해졌다. 모든 것을 돈으로 셈하려 하고 누구나 부자 되기를 바란다.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가 뒤바뀌어 버렸다. 이런 모습은 옹고집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 우리는 본래 우리 모습이 어떠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또 앞으로 우리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 건강한 미래를 찾아야 한다.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옹고집처럼 자신을 반성하고 남에게 베푸는 새사람으로 태어나야 한다. 작지만 남에게 베푸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진짜' 옹고집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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