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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만무방 - 김유정 단편소설

by 인문학엄마 202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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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만무방

김유정 하면 대표적으로 동백꽃과 봄봄이 떠오릅니다.  오늘은 만무방 단편소설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만무방

작가 소개

김유정은 1908년 1월 11일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습니다. 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2년 후에 아버지마저 여의었습니다. 그 후 약 4년간 집에서 천자문, 논어 등을 배우고 12세에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안회남, 임화 등과 함께 공부하며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겼고, 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러시아 문학 전집과 바이런 시집, D.H. 로렌스와 맨스필드, 이효석 등의 작품을 많이 읽었습니다. 

1929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김유정은 곧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학업에 대한 회의, 빈곤, 신병 등의 이유로 이듬해 중퇴하고, 1930년 후반에는 전국 각지를 방랑하기도 했습니다.

1931년 김유정은 고향으로 내려가 실레 마을에서 야학을 열고 문맹자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손수 야학당을 짓고 농우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농촌 계몽 운동을 추진하면서 금병의 숙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생활은 여전히 불안정한 했습니다. 

김유정의 소설 창작 활동은 1933년경부터 시작됩니다. 이 무렵 그는 서울로 올라와 셋방을 살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 가고 있었는데, <소낙비>와 <산골 나그네>를 집필하고 1934년에 <만무방>을 집필했습니다.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소낙비>가, 중앙일보에 <노다지>가 당선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어 발표한 <금 따는 콩밭>, <떡>, <산골>, <봄봄> 등을 잇달아 발표합니다. 이 소설들은 대개 가난한 농촌에서 순박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을 해학적이고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이후 그의 작품들도 대체로 유사한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후 1937년 3월 29일, 스물아홉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소설 30편, 수필 12편, 그리고 번역 소설 2편을 남기고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만무방 줄거리

응칠이는 부채 때문에 파산하여 식구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합니다. 그는 아내와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다가 결국 헤어지게 되고, 그 이후 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도박과 절도를 일삼아 옥살이도 여러 번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아우가 그리워진 응칠이는 아우인 응오의 동네로 와서 하는 일 없이 놀고먹으면서 동생 응오에게 신세를 지고 삽니다.

순박하고 성실한 소작농인 응오지만 가혹한 땅 주인인 지주의 착취에 맞서 추수를 거부하게 됩니다. 그는 병을 앓는 아내를 위해 산치성을 올리려고 형에게 돈을 구해 줄 것을 청하지만 응칠은 이를 거절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응칠은 응오 논의 벼가 도둑질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마을 사람인 성팔이는 전과 경력이 있는 응칠을 응오 논의 벼를 도둑질한 사람으로 지목하고 의심합니다. 

의심을 받게 된 응칠은 동생 응오를 돕고 자신의 결백함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벼 도둑을 잡기로 하고 잠복을 하게 됩니다. 

깊은 밤, 응칠은 도둑을 잡으려고 논 근처에 숨어 도둑을 기다리고 결국 그는 도둑을 발견하고 싸움 끝에 도둑을 떼려 잡습니다. 도둑을 잡는 데 성공하지만, 도둑이 동생 응오였다는 사실을 알고 어이없어합니다. 응오는 형마저 자신을 못 살게 구느냐며 탓하고, 응칠은 좋은 수가 있다며 동생을 달랩니다. 그러나 응오가 형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달아나려 하자 이에 화가 난 응칠은 동생을 때립니다. 매 맞고 땅에 쓰러진 응오를 보며 한숨짓던 응칠은 동생을 일으켜 등에 업고 고개를 내려옵니다. 

작품 해설

<만무방>은 일제 강점기 시대 우리나라 농촌의 현실적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응오는 자신이 농사지은 벼를 추수하지 않는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농사짓는 데에 들어간 여러 비용을 빼고 나면, 한 해 동안 힘들게 농사지은 그에게 남은 것은 고생스러운 농사일의 흔적인 고된 몸뿐이었습니다. 

자신이 농사지은 벼를 도둑질할 수밖에 없는 응오의 처지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우리 농촌의 현실을 소작농의 모습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응칠이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인물로, 가족도 집도 없이 도박과 절도를 일삼으며 오랜 부랑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만무방으로, 여러 곳을 돌아다녀 사회의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아는 인물입니다. 이러한 응칠은 자신의 동생이 벼를 훔치는 도둑인 것을 알게 되자, 심한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다 바로 '좋은 수'가 있다며 위로하는데 좋은 수란 어느 집 바깥들에 늘 매여 있는 황소를 훔치는 것이었습니다. 소를 훔치는 도둑질의 행위가 '좋은 수'라고 표현한 것은 도둑질과 같은 옳지 못한 행위가 이들의 처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순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만무방이란 염치가 없이 막된 사람이란 뜻으로, 이 소설에서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응칠이를 빗대어 사용되고 있지만 빚 때문에 터 잡고 살던 농촌을 떠나 도박과 절도를 일삼는 응칠이나, 모범적이지만 팍팍한 삶에 나아질 게 없는 현실에서 자신이 경작한 벼를 훔치는 응오 모두 만무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이 소설은 1930년대에 일제 강점기에 우리 농민 전체가 모두 만무방임을 드러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만무방이 결국 사회의 윤리에 위배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모순된 사회가 빚어낸 인간이라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노력을 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서 산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한 현실을 작품 속에 녹여낸 한국소설 중 하나인 <만무방> 아주 짧은 단편소설이니 한 번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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