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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by 인문학엄마 2023.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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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중심지 인도를 다녀온 승려의 여행기로 <왕오천축국전>은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 온 고전소설과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왕오천축국전>

 

대부분의 고전소설이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의 삶이나 작가에 의해 창조된 인물에게 일어난 사건을 통해 재미와 깨달음을 전달하고자 한다면, <왕오천축국전>은 그와 달리 혜초가 여행 중에 직접 보고, 듣고, 경험했던 내용을 스스로 기록한 여행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작품을 고전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읽어야 합니다.

 

<왕오천축국전>에서는 혜초가 어떠한 나라와 지역을 거쳐 갔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체험하고 깨달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혜초는 단순히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 위해 떠났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혜초에게는 어떤 위험과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목적과 이유가 있었습니다.

<왕오천축국전>의 몇 가지 특징

<왕오천축국전>을 읽기 전에 이 책의 몇 가지 특징을 알아 둔다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왕오천축국전>의 작가인 혜초의 삶, 책이 전해 온 방식, 여행기로써의 의의, 책에 등장하는 인도와 그 의미에 대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왕오천축국전>의 작가와 글을 쓴 시기

대부분의 고전소설이 누가, 언제 썼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과는 달리, <왕오천축국전>은 혜초(704~787년)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라성덕왕 대의 승려인 혜초는 중국 광저우에서 인도 승려인 금강지에게 밀교를 배웠고, 이를 계기로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게 됩니다.

밀교는 비밀 불교라고도 하는데, 인도에서 7세기 후반에 유행하다가 13세기 초에 사라진 불교의 한 유파입니다. <왕오천축국전>에 나오는 것처럼 밀교는 금강지 등에 의해 중국 당나라까지 전해졌으며, 심지어 일본까지 전해져 크게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혜초는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돌아와서도 밀교 연구에 자신의 삶을 바쳤습니다. 그는 금강지와 함께 천복사라는 절에서 밀교 경전을 연구했을 뿐만 아니라 금강지가 죽은 뒤에도 마지막 힘을 쏟아 밀교 경전의 번역을 마쳤다. 그것이 바로 <대교왕경>입니다. 이처럼 혜초는 평생 밀교를 연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데 삶을 바쳤습니다. 그리하여 생전에 자신이 태어난 나라인 신라에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혜초가 스승인 금강지의 권유에 따라 인도를 떠난 것은 723년이었다. 그 뒤 대략 4년 동안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것이 727 년경입니다.

<왕오천축국전>이 혜초가 여행을 마친 뒤에 쓴 것이라고 추정한다면, 상당히 오래전에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왕오천축국전>은 혜초가 썼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해 왔습니다. 이 책은 오랫동안 잊혔다가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폴 펠리오에 의해 중국 간쑤 성에 있는 둔황 석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1915년 일본의 학자 다카구스 준지로에 의해 <왕오천축국전>의 작가가 신라 시대의 승려인 혜초임이 밝혀졌습니다.

<왕오천축국전>은 원래 총 3권인 것으로 보이지만, 처음부터 손으로 직접 베껴 쓴 필사본의 형태로 1권만 발견되었으며, 앞부분과 뒷부분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습니다. 또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요약된 형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오천축국전>은 이 책이 쓰인 8세기 무렵의 동아시아의 상황을 전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자료적 가치가 큰 것입니다.

이 책은 1928년 독일에서 번역되기도 하였고, 1943년에는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학자인 최남선에 의해 출간되어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왕오천축국전>은 우리나라의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어 안타깝습니다.

 

여행기로써의 의의

흔히 고전소설에서 '전(傳)'은 어떤 특정한 인물의 삶을 기록하고 작가가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덧붙이면서 독자에게 교훈이나 비판을 담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띠는데, 이때 '전'에 등장하는 인물은 최치원과 같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도 있고, 홍길동과 같이 작가의 상상에 의해 창조된 인물도 있습니다. 이 책 《왕오천축국전>은 책에 등장하는 혜초가 역사에 실존했던 인물이며, 책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서 그가 불교세계에 들어가고 불교의 발전을 위해 어떠한 길을 걸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전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혜초의 삶을 보여 준다기보다는 혜초가 인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등을 여행하고 그 과정에서 느낀 감상, 생각, 깨달음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여행기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왕오천축국전>을 통해 혜초가 어떠한 나라와 지역을 여행하였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혜초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으며 왜 그 지역을 여행하려고 했는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행'이라는 것은 우리가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는 지식을 실제로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장성과 체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오래전에 존재했던 당나라, 인도, 중앙아시아를 간접적으로 여행해 봄으로써, 여행기의 매력에 푹 빠져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한 유일한 기록

혜초가 인도를 다녀온 것은 8세기이지만 실제로 훨씬 전인 6세기에 백제의 승려인 겸익이, 7세기에는 신라의 승려인 혜업, 현조, 현각 등이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이후 13세기에 고려의 승려 각훈이 기록한 <해동고승전>을 보면 인도에 간 승려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오천축국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 책이 인도를 여행한 승려들의 여행기 중에서 유일하게 전하고 있으며, 특히 8세기의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한 세계 유일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오천축국전>의 자료적인 가치는 큽니다.

그럼 혜초는 왜 '인도를 중심으로 여행을 했으며, 그 지역에 대한 기록인 <왕오천축국전>을 남겼을까? 혜초가 인도를 여행하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스승인 금강지의 권유 때문이며, 그가 직접 인도의 불교를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불교가 탄생하고 전파된 본고장이 바로 인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에 대한 신념과 열정이 깊었던 혜초는 자연스럽게 '인도'로 향했으며 <왕오천축국전>을 남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왕오천축국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8세기 동아시아 문명의 모습입니다. 당시 동아시아 문명의 모습과 어떤 경로를 통해 문화와 문물이 전파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왕오천축국전>의 첫 부분에서 혜초는 큰스님의 권유로 원광 스님과 같은 훌륭한 스님이 되기 위해 당나라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그가 처음 본 당나라는 새로운 학문을 배우려는 유학생, 서역에서 온 상인,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거나 전파하려는 스님들로 넘쳐 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수도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갖가지 진기한 문물들이 가득했습니다. 이로 미루어 당시 당나라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오가면서 다양한 문물을 교류함에 따라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왕오천축국전>에서 혜초가 인도를 여행한 후 파미르 고원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가 거쳐 간 길은 실크로드, 즉 비단길이었습니다. 비단길은 고대 중국과 서역 간에 비단 및 여러 가지 문물을 교류했던 곳으로, 혜초가 거쳐 간 육지의 길뿐만 아니라 바닷길도 있었다. 이 비단길 덕분에 동서양의 여러 문물과 문화가 넘나들면서 동양의 정치, 경제, 문화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특히, 비단길은 동아시아곳곳에 불교 문물을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각 지역의 불교적 세계관

<왕오천축국전>에서 혜초가 인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를 여행한 목적은 부처님의 자취가 남아 있는 나라와 지역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혜초는 뱃길로 인도로 들어가 인도의 동부, 서부, 중부, 남부, 북부를 여행하면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곳, 화장된 곳,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베푼 곳, 태어난 곳을 다니며 부처님의 삶을 직접 느껴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인도의 각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 지역에 절이 많은지, 불교를 믿는 사람이 많은지를 확인하는데, 이것은 혜초가 얼마만큼 그 지역의 불교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 준다. 그리고 각 나라의 절, 탑, 불교행사를 보면서 불교가 그 나라 백성의 마음에 얼마만큼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확인하였다. 하지만 혜초가 본 당시 인도에는 힌두교 신자가 많았고 불교 스님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혜초는 여행하는 과정에서 그 지역 사람들이 스님에 대해 어떤 인심을 가지고 대접하는지, 또한 그 지역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잘 사는지에 따라 불교가 발달했는지, 아닌지를 추측해 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불교는 민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의 차이와 다양성

<왕오천축국전>을 통해 혜초가 여행하는 지역마다 기후, 지리, 언어, 문화 등이 각각 특색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지역은 날씨가 무덥거나 넓은 평야로 이루어져 있고, 또 다른 지역은 산악 지대여서 외부의 침입이 적은 반면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혜초가 여행하는 각 나라는 지형과 지리에 따라 기후가 다르고, 심지어 언어도 달랐다. 그중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문화의 차이와 다양성입니다.

예를 들어 혜초는 인도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무더운 날씨의 영향이거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페르시아 사람들의 복장이 인도와는 달리 수염과 머리를 깎고 흰 천을 몸에 두른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불을 숭상하는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습니다. 이를 통해 지리, 기후, 종교 등에 따라 그 나라만의 특이한 문화가 생겨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왕오천축국전>에서 혜초가 처음 본 나라의 문화와 풍습에 놀라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아랍에서 왕이나 백성이 차별이 없는 형제애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이 고기반찬을 주로 먹는 독특한 풍습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랍의 동쪽에 있는 호국의 남자들은 자기 어머니나 누이동생을 아내로 삼거나 여러 명의 형제들이 한 명의 아내와 살기도 합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우리는 각 나라와 지역마다 그에 맞는 문화와 풍습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우리와 다르다고 배척하기보다는 각 나라문화의 특색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정치·사회적 상황의 반영

혜초는 인도의 각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 나라의 코끼리가 몇 마리냐에 따라 나라의 힘이 강한지 약한지를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인도에서 코끼리는 실제 전쟁에서 이용할 수 있는 동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왕오천축국전>에서 동아시아의 중심지인 당나라와 함께 새로운 세력을 키우고 있던 나라인 아랍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당시 당나라는 파미르 고원, 카슈미르, 쿠차 등의 나라를 지배할 만큼 힘이 있었다. 그리고 혜초가 거쳐 간 나라 중 서인도국이 아랍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거나 토카리스탄, 페르시아 등이 아랍의 침략을 받았다는 점에서 아랍이 동아시아에서 큰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혜초는 아랍을 방문하면서 자기들끼리는 형제라고 여기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해 땅을 넓히려는 아랍 사람들의 욕심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8세기 동아시아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왕오천축국전>은 자료로써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왕오천축국전>에 나타난 시의 기능과 그 의미

고전소설에는 중간중간 시가 나오는 것도 있다. 소설에 삽입되는 시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하거나 인물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왕오천축국전》에도 혜초가 여행 중에 직접 지은 시 5편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혜초가 시를 통해 여행 중에 느낀 감상을 간접적으로 전달하여 독자의 공감을 얻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시와 같은 서정적인 양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면 자신이 느낀 감정을 더욱 생생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혜초는 시를 통해 자신이 머릿속으로 그려 오던 곳을 실제로 봤을 때의 설렘, 외딴곳에서 느끼는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에 대한 슬픔, 여행길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표현하였다. 혜초의 시는 그러한 감정을 설명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더욱 깊고,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왕오천축국전>이 주는 교훈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의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세계 유일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자료적인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 혜초는 이 책에서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여행한 나라와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대해 간단한 설명과 감상을 더해 당시 동아시아 문명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특히, 혜초는 정치와 사회적 상황 이외에 풍속이나 문화의 차이와 다양성을 기록하여 이 책의 자료적인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또한, 바닷길을 통해 인도로 들어가 육지를 통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당시 여행 방식이나 여행길이 어떠했는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왕오천축국전>에 나타난 혜초의 모습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혜초는 오로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었던 곳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어떠한 위험과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여행길에 올랐고, 결국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였다. 오늘날과 같이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 혜초의 여행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부처님의 보살핌을 믿고 그 과정을 이겨 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자신의 여행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여행기를 썼고, 불교에 대한 신념과 열정을 담아 번역 작업을 완성하였습니다.

우리는 혜초가 살아간 삶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얼마만큼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자신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혜초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강한 신념과 열정이 있다면 어떠한 일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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